어린이집 후기

어린이집 후기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와 학부모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앙윤슬 어머니

더할나위 없었던, 발도르프에서의 6개월

2026. 2. 26.

저희는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입니다. 7세 남자 아이 윤슬이, 싱가포르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이렇게 셋이 살고 있어요.

싱가포르엔 계절이 없습니다 - 매일이 여름이지요. 그리고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한국인으로서 당연하게 알고 느끼는 많은 부분을, 싱가포르의 아이들은 모르고 자랍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이에게 사계절과 자연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주의 유치원과 학교를 알아보게 되었고, 숲유치원을 찾다 우연히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낮잠인형

발도르프 어린이집에서의 첫 느낌은, 왜 유치원이 이렇게 평화롭지? 였습니다. 떼쓰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그렇다고 선생님의 가르치는 목소리만 들리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각자의 놀이를 따로, 또 같이 평화롭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날은 그 한 구석에 앉아 낮잠 인형을 만들었지요. 내가 여기서 왜 이걸? 이란 약간의 당황스러움도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러면 아이가 편안하게 적응을 시작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시기에 오신 다른 어머니도 계셔서 바느질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저도 조금 편안히 시작할수 있었네요.

그렇게 시작된 발도르프에서의 생활은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커다란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한 시간씩 산책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곶자왈에 가고.

선생님들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좋음을 전해주려 온힘을 다하신달까요.

‘태양 처럼 밝게, 꽃처럼 아름답게, 돌처럼 단단하게 그렇게 되게 하소서’ - 이런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부드러운 손길로 오일을 발라주시고, 아이들은 낮잠 시간을 가집니다.

“파랑이 노랑을 안아주는 모습을 그려보아요.” 이런 말로 색과 형태를 느끼고,

매일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 밀랍 크레용으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미디어가 사라진 시간을 손뜨개로, 양모솜 바느질로 채우는 생활.

미리 준비된 키트로 김치 만들기 ‘체험’이 아니라 마늘을 까는 것부터 함께 시작하는 김장하는 날,

공벌레를 귀여워하고, 거미를 사랑하게 되는 생활.

엄마 왜 일찍 픽업하러 오지 않았어가 아니라, 엄마 왜 일찍왔어 여기 있을래를 외치는 하루 하루.

심심하게 앉아있지 못하고 유튜브를 봤었는데. 심심하게 있을 수 있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손바느질

부모로서도 많이 배우고, 많이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원례 모임, 학부모 모임, 교육 워크숍, 책모임까지.

처음에는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뭔 유치원에서 시키는게 이렇게 많나? 아이를 맡기는 건,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함이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아이를 중심에 둔 교육이기에, 아이의 시간은 유치원에서 끝나지 않기에, 가정에서도 흐름이 이어져야 완성이 된다는 것, 그래서 부모의 참여와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겉핥기로나마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저희는 싱가포르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저에게, 지난 6개월간의 발도르프에서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tree

유치원 앞에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하원 시간마다 아이는 친구들과 그 나무에 매달려 한참을 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올랐습니다.

제 마음속의 제주발도르프어린이집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 온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 그리고 기꺼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함께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

이곳에서 보낸 시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